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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전태일 열사 다뤄… 근로기준법, 아름다운 청년, 어머니 이소선 열사

출처: KBS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에서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에 대해 다룹니다. 예고편에서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노래가 나와 전율을 흐르게 했는데요.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주장한 인물로 대한민국의 노동 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 전태일 나이, 업적

출처: KBS


전태일은 1960년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의 재단사로 일하며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태일은 22세의 나이에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노동운동 이후로 한국사회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인식했고 노동자 계층도 각성하게 됐습니다.

 


2. 전태일 생애

 


전태일은 1948년 9월 28일 대구 남산동에서 아버지 전상수와 어머니 이소선 사이에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전태일 가족은 4.19 혁명 이후 거액의 사기를 당해 극도로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전태일은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7세에 상경해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 재단 보조로 취직했습니다. 재단사로 일하면서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박봉, 질병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노동자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3. 전태일 근로기준법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심을 두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도 중퇴한 그가 국한문 혼용인 근로기준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밤을 새우면서까지 근로기준법을 공부했습니다. 

 


4.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남쪽에 위치한 동화시장 계단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태우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쳤습니다. 이후 전태일 열사는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심각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전태일은 마지막으로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1970년 11월 13일 밤 10시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5.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의 죽음 이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서 노동 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아들의 유지를 이어 받아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민주화 운동 유가족의 대표적인 인물로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2011년 7월 18일 심장마비로 의식 불명에 빠졌다가 같은 해 9월 3일 작고하였습니다.